Q1. 어떻게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음… 시작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기억은 잘 안나는데 완전 어릴때 유치원에서 놀이 영역, 그니까 교실에 놀이 기구들이 있는 곳에 도형 그리기, 단어보기, 블록 쌓기 등 여러 활동을 하는 곳이 있었는데, 모두가 블럭을 쌓을 때 혼자 그림그리기를 하고 있었다고 들었다. 진짜 모두가 놀고 있을 때 혼자 거기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헀는데 그게 아마 시작이지 않았을까 했다.
그러고 미술을 진로로 하겠다고 한 거는 중2 겨울이다. 예전부터 미술학원은 계속 다니고 있었다. 전공/취미반이 구분되어있는 학원이었고 그 때 당시에는 취미반으로 다니고 있었는데, 전공반 쌤이 벽에있는 그림 보고 얘는 미술 전공을 시켜야 한다고 말을 들었었다. 이전에는 미술이 취미로써 흥미는 있었지만, 사실 전공으로는 좀 확신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 예고를 가야할까 생각하곤 했는데, 일단 시작해보려면 예고를 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고, 중3 겨울에 준비해서 선화예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예고에 진학한 후 1학년은 아직 전공을 정하지 않은 시기였는데, 1학년 때 넌 디자인과를 해야 한다 라는 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그러다가 디자인의 과정에서 순수 미적인 것보다는 논리와 맥락을 따져가는 과정에는 그렇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디자인에 가까운 순수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조건에 맞는 전공이 뭘까 하다가 공예가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공예과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Q2. 공예와 디자인의 차이를 느꼈다면?
전공생으로서의 차이는 아무래도 과정에 있어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는 것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작업 과정이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만드냐 아니냐의 차이가 가장 큰 것 같다. 디자인은 디지털에서 그리드, 픽셀 하나하나 등 엄청 미세하게 조정하고 그게 실물로서 구현되었을 때 그 재미? 쾌감이 있다고 느꼈다. 사실 이게 디자인을 할 때 숨통이 트였다고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텍스트가 있다는 점이었다. 공예에서는 텍스트 자체를 읽기 위한 공예는 할 이유가 굳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굳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치만 시각디자인과에서는 타이포그라피의 힘이 크고,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문장, 워딩 등이 줄 수 있는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와 그 형태를 대지 위에서 갖고 놀 수 있는게 재밌다고 생각한다.
Q3. 전과를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현실적인 이유와 자아실현의 이유가 공존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순수와 디자인이 있다면 그 중간에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공예과에 입학을 하고 봤다. 그 이후 어떤 것을 만들고 싶나에 대한 생각을 했는데, 엄청난 기술이 들어간 제품보다는 간단한 형태나 테크놀로지적이지 않은, 예쁜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엄청 실험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러한 심미적인 게 느껴지는 것을 하고 싶었는데, 1년동안 도예과에서 도예를 배우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생각보다 내가 상상한 걸 그대로 실현하기에는 재료적으로 한계였던 것 같다. 아무래도 재료가 흙에서 한정되어있다 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정형적이고 딱딱 맞아 떨어지는 형태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시각디자인과로 왔을 때에는 나의 기획/작업과 결과물이 1:1로 온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거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도예에서는 아무래도 도자가 가마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형태가 변형되기도 했고, 재료를 사용할 때 항상 예측불가능한 변수를 신경써야 하는 거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하얗고 반짝이는 걸 만들고 싶어서 만들고 가마에 구웠는데 곰팡이색이 나와버리고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머리를 쓴다고 해도 그대로 나와주질 않았다. 우연성이 주는 재미도 분명 있었겠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느껴서 전과를 결심하게 되었다.
또.. 사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도예를 평생 하면서 돈을 많이 못 벌 거 같다는 생각이 컸다. 시디가 무조건 돈을 잘 버는 건 아니겠지만 물론, 하나의 재료에 묶이게 되는 것이 싫었다. 시디는 나름 세부전공도 다양하면서도 그 갈래가 다 쌩뚱맞지 않고 통상적인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게 중간에 바뀌더라도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본다. 근데 도예는 그저 흙을 마스터해서 졸업하는 것 이외의 뭔가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물레를 1학년때 배웠는데, 그 뱅뱅뱅 돌아가는 물레를 보면 정말 돌아버릴 것 같고 현타도 왔었다. 😇
Q4. 공예를 전공했었다는 경험이 디자인을 배우면서 어떤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공예과에서 뭔가를 만들고 만지고 했던 게, 타이포 수업들을 들으면서 빛을 많이 발했던 것 같다. 그 수업에서는 책을 되게 많이 만들곤 했는데, 실물을 직접 만들어나가는 단계에서 조금 어려운 형태더라도 이걸 제작하는 과정이 어려울 것 같아서 망설인 적은 없었다. 그 형태가 어떤 구조로 되어있던지간에 어쨌든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고 사실 다 만들어냈다.(ㅋㅋ) 그래서 대량생산의 체제에서는 불가능 한 다양한 형태를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내가 만약 디자인만 했으면 정형적인 그 틀 안에서만 갇혀서 작업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싫어서 떠나 도예였지만, 도예과를 간 경험이 후회되지는 않을 것 같다.
Q5. 주로 어떠한 작업을 좋아하시나요?
화려한 작업도 물론 좋기는 한데, 전하려 하는 의도만 딱 보여지는 작업들이 좋다. 사실 뺄거 다 뺀 작업이 가장 좋다. 이게 왜 좋냐고 물어보면 사실 뭐라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그냥 좋은게 좋은거지만… 정말 뭐 엄청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그게 좋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딱딱 떨어지는 형상들, 정원, 수직/수평 등 기하학적이고 정형적인 형태에 끌리는 것 같고, 필요없는 것을 다 빼고 난 후 의미만 온전히 시각적으로 설득시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Q6. 이러한 취향에 맞는 좋아하는 작업이 있나요?
타이포그라피(3) 수업시간에 만들었던 R723이라는 책 작업이 가장 이 취향에 부합하는 작업인 것 같다. 공간을 하나 선정해서 책으로 공간을 담아내는 과제였고, 공간의 구조적, 또는 개념적인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 과업이었다. 나는 기획 과정에서 공간의 구조적인 특징을 위주로 담는 것은 그 의미와 시각적 결과물이 1:1로 다가온다고 생각했고, 그거보단 내가 보고있는 공간에 대한 개념을 담아내는게 더 재밌고 더 어려울 것 같아서 그걸 시도해봤다. R723은 사실 저 수업을 듣는 강의실 호수였는데, 그 수업을 듣는 장소를 선정한 이유는 결국 결과물을 보는 작업을 보는 장소도 R723이니까, 학우나 교수님에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 주관이 섞여있대도 그 공간에 대한 이해가 같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저 공간을 선정했다. 그 학기에 그 교실을 매주 방문할 수 있는 게 나름 우연의 우연이라고 생각했고,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그 공간을 선정했다.
R723을 구상할 때 이 공간에 도달하는 과정과 문을 열고 들어간 후에 느껴지는 인상의 대비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봤다. 723을 찾아갈 때에는 사이니지도 많이 보고, 에타같은 학교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많은 설명을 찾아봐가면서 가야 하는 공간이지만, 이 공간에 들어가게 되면 이게 723인지 724인지는 더이상 중요해지지 않게 되는, 이 공간이 어딘지가 크게 중요해지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를 공간의 안과 밖의 대비가 이뤄진다고 생각했고 책의 안과 밖을 구분해주는 표지를 공간의 안과 밖을 구분해주는 기점은 문과 연결지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책 표지를 맨 앞이 아닌 가운데에 배치하였다. 그래서 문을 열기 전 723을 찾아가는 많은 정보들을 텍스트로서 표기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의 있는 공간의 이미지로 인해 앞의 내용들이 다 까먹어질 수 있을 만큼 길게 이어질 수 있도록 사진들을 이어붙여 제본을 했다. 723을 읽고 나서는 내가 그 앞에서 읽은 정보가 굳이 느껴지지 않아도 되게끔.. 그렇게 기획하고 디자인해였다.
>나름 성공적으로 나의 의도가 가장 잘 담아지고 디자인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인터뷰어(주현)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기도 한 것 같다.
Q7. 좋아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꼽아보자면?
일단 슬기와 민, 진달래박우혁, 김형재홍은주이다. 신기하게도 두 명씩 운영하는 스튜디오만 좋아하는 것 같은데, 간단하게 말하면 그분들 스타일이 좋다. 엄청 화려한 건 아닌데 딱 핵심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완성도 있게 작업을 만드는 게 부럽기도 하고 내가 하고싶은 것이다. 그리고 세 스튜디오 다 타이포그라피를 작업에 적극적으로 쓰는 방식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뭔가… 원래 셋 다 좋아했는데, 요즘은 특히 김형재 홍은주 작업이 좋다. 색감도 좋아하는 색감을 쓰기도 하고 군더더기 없이 잘 읽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설명을 보지 않아도 이미지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특히 좋아하는 걸 뽑자면 김형재, 홍은주의 Sound~~라는 전시 포스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포스터에서는 퍼지는 듯한 그래픽을 썼는데, 간단한 모션만으로도 충분히 시각적으로 설득력이 있어서 좋다. 다른 스튜디오들은 설명글을 봐야 이해가 가는 것도 있는데, 이 곳은 시각적으로 바로 소통이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k-pop 아이돌같은, 눈뽕 터지는 것들에 비하면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운용만으로 디자인되고 간결한 그래픽을 쓰는 것이 레트로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런게 내 취향인 것 같다.
Q8. 요즘 일상에서 가장 재밌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한글꼴연구회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세벌체를 제작하는 봄 전 준비가 쏟아지는 과제들 중에서 제일 힐링인 것 같다. 부담이 제일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작업 방향성에 나의 주관을 가장 많이 담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수업에서도 분명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수업의 취지와 방향성에 맞춰서 나의 표현 방식에 제약을 두거나 방향성을 수정하게 되는 부분이 많아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모임 봄 전시는 포맷은 정해져 있지만 표현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약간 부담도 되지만 즐겁게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도예과에서는 전시를 해 본적이 있지만 시디과에 오고 나서 전시경험이 없었는데, 나름 7층의 중심인 공간에서 첫 전시를 하게 되어서 기대가 되기도 한다.
더해서, 폰트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폰트 한 벌을 만드는 거가 볼륨이 큰 작업이기도 하고 어떻게 시작을 해야하는 지도 잘 모르고 있어 정말 그냥 하나의 소망… 정도였는데, 세벌체 형식을 빌려 폰트를 한 벌 만들게 되어 나름 소원을 반 정도는 이룬 것 같다.
Q9. 취미가 있다면?
특이하게도... 몸을 움직이거나 뭔가에 깊게 빠져서 즐기는 활동은 없는데, 이걸 취미라고 할 수 있다면 소개하고 싶은 게 있다. 사실 나는 한글꼴에 입단했지만 라틴 서체를 모으는 걸 좋아한다.(ㅋㅋ) 이유는, 인스타 같은데에 디자인 작업물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는데, 알고리즘을 탄 거라 그렇거 같긴 한데 한번 영문 서체들을 하는 회사들을 팔로잉하니까 계속 팔로우 목록에 뜨게 되고, 피드에 떠서 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라틴 서체를 찾아보게 된 것 같다. 라틴 서체가 한글에 비해 제작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아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형태적으로 다양한 라틴 서체를 볼 수 있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한글은 뭔가 서체들이 특정 글자 하나만 시각적 특징이 드러나는… 좀 튀는 걸 하기 어려운데, 영문은 특이한 글리프를 만들어서 글자 하나만 튀게 만들 수 있는 그러한 변주를 줄 수 있는게 특이하고 재밌었다. 최근에 서체관리자 열어보니까 곧 서체 갯수가 1000을 돌파할 것 같고, 서체관리자 렉이 엄청 걸린다...
그리고 한글에 비해서 알파벳은 문자 수가 적으니까 하나 다운 받아서 드르륵 쳐 보면서 느낌을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리고 특히 작업을 할 때 가장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은데, 눈에 익힌 서체가 하도 많으니까 작업을 할 때 이 컨셉에 맞는 서체가 뭐지? 하면 바로 드르륵 볼 수 있고, 하도 많이 보게 되니까 일상이나 길거리, 문화 공간 등에서 글자를 봤을 때 어떤 서체가 쓰였는지 바로 알아볼 수 있고 그런게 나름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치 하나를 얻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Q10. 작업 외의 것에서 취미가 있다면?
작업 외에 취미는 딱히 꼽기는 어려운데, 요즘 빠진게 있다. 어딜가던 사진은 항공샷으로 찍어야 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무조건 초광각으로 찍어줘야 한다. 얼굴이 잘 나오든 못 나오든 매일 항공샷을 찍다보면 같은 시점과 같은 포즈로 통일감 있으면서도 때마다 옷과 음식과 다른 포즈들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재미를 느낀다.